성찬식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신성한 의식입니다. 본 글에서는 성찬식의 기원과 의미, 교파별 차이, 신학적 해석, 현대 교회에서의 실천 방식 등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글의 말미에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으니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성찬식이란 무엇인가?
성찬식(聖餐式, Eucharist)은 기독교의 중심 의식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적으로 기념합니다. 이 의식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교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시행됩니다.
성찬식의 기원과 성경적 배경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마태복음 26:26-28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말씀을 통해 성찬식은 예수님의 희생과 새로운 언약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의 성찬식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성찬식이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처럼 초대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공동체의 핵심적인 신앙 행위로 실천하며, 예배와 함께 행했습니다.
성찬식의 신학적 의미
성찬식의 신학적 해석은 교단마다 차이가 있으며, 다음과 같은 주요 해석이 존재합니다.
- 실체 변화설(Transubstantiation): 가톨릭 교회의 입장으로, 빵과 포도주가 신비롭게 예수님의 실제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믿습니다.
- 공재설(Consubstantiation): 루터교의 입장으로, 빵과 포도주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몸과 피가 함께 존재한다고 봅니다.
- 기념설(Memorialism): 개신교(특히 침례교와 개혁교회)의 입장으로, 성찬식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의식이라고 해석합니다.
교파별 성찬식의 차이점
- 가톨릭 교회
- 성찬식은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직접 받아들인다고 믿습니다.
-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실체 변화를 일으킨다고 가르칩니다.
- 정교회
- 성찬식을 ‘신성한 전례(Divine Liturgy)’라 부르며, 가톨릭과 유사한 실체 변화를 믿습니다.
- 발효된 빵을 사용하고, 신자들에게 포도주와 함께 제공합니다.
- 개신교(루터교, 개혁교회, 감리교, 침례교 등)
- 성찬식의 의미와 실행 방식이 다양합니다.
- 루터교는 공재설을 따르지만, 개혁교회는 기념설을 강조합니다.
- 성찬을 자주 시행하는 교단도 있고, 특별한 절기에만 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정교회: 고대 전통과 현대 신앙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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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의 현대적 적용과 중요성
현대 교회에서도 성찬식은 중요한 예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찬을 통해 신자들은 신앙을 새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되새기며, 교회 공동체와의 연합을 경험합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예배에서도 성찬식을 시행하는 교회가 증가하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신앙적으로 성찬을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론
성찬식은 기독교의 가장 신성한 예식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며 신앙을 새롭게 하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교파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성찬식을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영적 연합을 경험하게 됩니다.
추가내용
성찬식의 내용을 읽어보셨다면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사고에서 빵과 포도주를 실제 몸과 피로 인식을 한다는 것은 비 논리적이며 더 나아가서 미신적인 요소가 매우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미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좀더 뒤에 설명합니다.
다른 종교를 잠시 돌아봅시다. 한국의 대표 민속신앙인 무교를 봅시다. 무교라 하면 미신으로 범벅인 것으로 여깁니다만, 어떤 부분이 미신인지 확인해 보는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무속에서도 기독교와 같으니 성찬식을 합니다. 물론 자주하지요. 제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합니다.
성찬식은 신격화된 예수님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를 동참하는 상황을 기리는 행위입니다. 이는 제사상과 무엇이 다를까요? 제사상도 조상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리기 위하여 하는 행위입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조상은 귀신이고 예수님은 신으로 추앙되었다는 점에서 다를것이라 봅니다.
또한 우선 부적에 대한 부분을 보면, 부적으로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 미신이라고 하지만, 구약성서에 보면 마찬가지의 것이 나옵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면 병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내용 뿐 아니라 죽음도 면하는 대단한 신통력을 지닌 내용이 있습니다. 양은 그 지역에서 흔하지만 한국은 흔치 않거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닭을 사용하였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듯 닭의 피를 마당에 흩뿌리거나 발라서 액운을 쫒았습니다.
이것이 문명화 되면서 닭피보다는 부적이라는 좀더 깔끔한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으나, 닭피는 여전히 양피와 같이 전통적으로 사용합니다.
무당이 귀신을 쫒는 행위를 보면, 구약의 예수님이 귀신들린자를 내쫒는 것을 연상할 수가 있게 됩니다. 무당은 귀신을 쫒기위해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귀신을 쫒기위해 한가지 방법이 아닌 여러 방법으로 내 쫒은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쫒는 핵심 방법은 말로 내쫒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무당도 귀신을 말로 내쫒습니다.
따라서, 무속이 미신이라면 성경 역시 미신인 것과 같습니다.
참고로 예수님은 돈을 벌기 위한 행위는 없었으나, 무당은 돈을 벌어야 살아가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이 돈이 연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대상으로 난동을 피웠던 이유는 성스러운 장소와 물질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 시대의 샤먼들은 그 당시와 같은 지위도 없거니와 물질적 지원이 없으므로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부분에서 생기는 안 좋은 경우도 간혹 있게 됩니다. 즉, 예수님 당시대의 세속적 제사장들과 같은 무속인이냐, 또는 요한과 같은 비 세속적 제사장같은 무속인이냐의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