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여러 관점으로 성경의 기적을 분석한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 예수님의 물 위를 걷는 기적, 죽은 자의 부활 등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가? 다양한 견해를 바탕으로 기적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특히 글의 말미에 기적에 대한 다른 접근의 내용을 적었으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성경 속 기적의 개념과 의미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등장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출애굽기 14장 21절),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일(마태복음 14장 25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일(요한복음 11장 43절) 등 기적은 성경의 핵심적인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기적이란 자연 법칙을 초월한 사건으로, 이를 두고 종교인들은 신의 개입으로 해석하고, 과학자들은 자연적 원인을 찾으며, 영능력자들은 초자연적인 힘의 작용으로 설명합니다. 과연 기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2. 종교인의 관점: 하나님의 능력과 신앙의 표현
대부분의 종교인은 성경 속 기적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셨으며, 이를 통해 인간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① 구약의 기적: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다
출애굽기 14장 21절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② 신약의 기적: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마태복음 14장 17절에서 21절)를 통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장 43절에서 44절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며, 신앙의 본질을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③ 기적의 목적: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종교적 시각에서는 기적이 단순한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자연을 다스리신 사건들은 단순한 초자연적 행위가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신앙의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3. 영능력자의 관점: 초자연적 힘과 기적의 가능성
영능력자들은 기적을 신비로운 초자연적 에너지의 작용으로 이해합니다.
① 인간이 경험하는 영적 현상
많은 영능력자들은 성경 속 기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현대에도 기도나 명상을 통해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는 사례가 보고되며, 영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② 기적과 초자연적 에너지
일부 영능력자들은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강력한 영적 에너지의 작용"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실 때(마태복음 8장 3절), 손을 얹어 안수하신 것은 신성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③ 현대적 기적의 사례
오늘날에도 기도나 신앙을 통해 질병이 치유되었다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며, 영적 세계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4. 과학자의 관점: 자연 법칙 안에서 기적을 설명할 수 있는가?
과학적 관점에서는 성경 속 기적을 자연 법칙 안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① 홍해의 기적: 자연 현상의 결과인가?
출애굽기의 홍해 사건을 두고 일부 과학자들은 강한 바람이 불어 얕은 바닷물이 갈라지는 "풍속 효과(wind setdown)"의 결과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는 강력한 바람이 특정한 방향으로 계속 불면 물이 일시적으로 갈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기반한 설명입니다.
② 예수님의 물 위를 걷는 기적: 착시 현상인가?
일부 과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물 위를 걸으신 것이 아니라, 얕은 얼음 조각 위를 걸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서 묘사하는 장면과 다소 거리가 있는 해석입니다.
③ 죽은 자의 부활: 의학적으로 가능한가?
나사로의 부활 사건(요한복음 11장 43절에서 44절)을 두고, 일부 연구자들은 심장 마비나 깊은 혼수 상태에서 극적으로 회복된 사례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흘 이상 무덤에 있던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현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과학적 설명이 일부 가능하더라도, 성경 속 기적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임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5. 기적은 신앙의 문제인가, 과학의 문제인가?
성경 속 기적은 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증거이며, 영능력자들에게는 초자연적 현상의 일부로 해석됩니다. 반면, 과학자들은 자연 법칙 안에서 기적을 설명하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적을 믿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증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역사하실 수 있으며, 기적은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결국, 성경 속 기적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견
성경의 기적은 상당히 부풀려졌습니다. 이렇게 말 할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질 자체로 가능한 것과 불 가능한 것을 구별하고, 정신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별하면 알 수 있게됩니다.
간단히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성경 속의 기적은 물질이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변형된 내용들입니다. 물질에 이런 현상이 생기기 위하여는 외부의 힘이 작용해야만 합니다.
홍해가 갈라졌다고 하는 것은 어떤 내용일까요? 이 부분에서 지혜로운자와 무지한자로 명확히 나뉘게 됩니다. 한국어나 영어로 홍해로 되어있으나, 구약성경의 원어인 그리스어로 보면 그것은 홍해가 아니라 갈대가 있는 곳으로 나옵니다. Red가 아니라 Reed라고 명확히 써있습니다. 그 뜻은 갈대,해초,파피루스로 되어 있습니다.
즉 그것은 깊은 바닷물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매우 얕은 물이 있는 갈대가 무성한 곳의 물이 갈라짐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얕다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지만 어느정도의 깊이가 있는 물이라 할지라도 풍속효과로 인해 물이 완전히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모세는 그 당시의 그것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우선 모세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제사장 이라는 계층이 많이 나오는데, 제사장은 현 시대에서 볼때 어느 부류와 같은 것일까요?
제사장은 무당과 같은 계층입니다. 현 시대의 목사나 신부 스님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사장은 하늘에 빌어 메시지를 받는 영능력에 중점이 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사장에게 나타난 것은 천사라고 하는 존재인데, 이것은 무당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해주는 것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모세라는 자 자체는 그 현상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모세에게 그 때를 알려주면서, 지금 바로 지팡이를 바닥에 치라는 메시지를 전한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풍속현상은 자연현상이므로 굳이 지팡이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하게 되면 신의 입장에서 더 존경을 받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위대함을 받는 신은 무속에서 잡신으로 분류합니다. 즉 귀신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귀신의 특징은 귀신 자신을 위대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귀신과 엮인 특정 인간을 바지로 세워둡니다. 그리고 그 자를 써먹다가 필요성이 떨어지면 버립니다.
모세는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버림받게 됩니다. 물론 성경적으로 모세가 어떤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 하지만, 이상하다고 밖에 안보입니다.
이유는, 몇개월도 아닌 수년 이상을 늘 신의 대리자로 한계상황 하에서 수행하는 자라면 무의식에까지 신에 대한 충심과 신에 대한 행위들은 박히게 되어있습니다. 즉 생각없이 하더라도 무조건 신성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부분인데, 그것은 신이 모세에게 개입해야 가능하다는 설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신은 귀신이기 때문에 그런식의 개입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그는 결국 버려지게 됩니다.
이것 외에 다른 기적의 경우는 천문현상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신화의 내용을 이름만 다르게 하여 재구성 한 것도 있습니다.
결국 기적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